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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도박 100조원 시대 ② 대책 없이 확산하는 청소년 도박

아시아교정포럼 [2023-12-23 13: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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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도박 100조원 시대 ② 대책 없이 확산하는 청소년 도박

도박중독 청소년 증가에도 교육 및 단속 예산 줄어
시도교육청 예방교육 외면…4년간 예산 한푼 없는 곳 부지기수
단속도 비정규직 위주 인력에 느슨한 차단 조치도 한 몫
학생‧부모‧교사 위한 교육과 단속기관 협력체계 마련 시급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이하 '치유원') 광주센터에서 도박중독 상담을 받은 한 고등학생의 사례다.

“어느 날 SNS를 하던 중 한 광고 페이지가 떴다. 호기심에 클릭한 순간 도박사이트로 연결됐고 그곳은 신세계였다. 첫 시작은 사다리게임으로, 5분에 한 번씩 베팅했는데 결과가 발표될 때의 스릴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후 여러 도박을 하면서 돈이 점점 모이다 보니 자신감도 커졌다. 그래서 공부 같은 거 안 하고 도박으로 돈을 많이 벌어 나중에는 도박사이트 운영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도박에 돈을 잃기 시작했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수많은 거짓말로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거나 부모님의 돈을 훔쳤다. 이로 인해 수백만 원 빚이 생겼다. 돈을 갚으라는 친구들의 연락에 부모님이 알게 돼 도박할 수 없게 됐다” 

청소년들이 도박에 빠지게 되는 일반적인 경로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3~2022년) 도박범죄로 검거된 10대 청소년은 총 737명이다. 문제는 2021년 이후 증가 추세가 급속히 늘고 있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도박중독으로 진료받은 19세 이하 청소년 수를 2013년 14명에서 2022년 114명으로 8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집계했고, 이로 인한 요양급여비용은 20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처럼 청소년들이 도박으로 인해 치유받는 경우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다.

문제는 도박중독에 빠진 대부분 청소년은 더 이상 혼자 감당할 수 없거나 숨기기 어려울 때가 돼서야 상담을 요청할 정도로 자신의 상황을 숨기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수치상으로 나타난 도박 상담보다 실제 상담이 필요한 사례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측한다.

청소년 도박이 이렇게 범람 수준까지 이르렀음에도 교육당국은 예방교육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 2019년 치유원의 청소년 도박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 도박의 약 90% 이상이 단순히 재미와 호기심에서 시작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도박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예방교육이 중요함에도 정부는 외면했다.

‘도박중독 실태와 도박 중독자의 심리·사회적 특성(저자 이민규, 김교헌, 김정남)’ 연구에 따르면 문제성 및 병적 도박자의 약 70%가 20세 이전에 도박을 시작했고 이 중 32%는 15세 이전에 시작했다. 즉 청소년 때 도박중독 경험이 성인이 되어서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청소년 도박이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확산하는 데는 관련 예산문제도 크다.

2021년 231억 7,500만 원이던 도박문제 예방·치유 사업 예산은 2년 연속 줄어들더니 올해는 217억 9,300만 원에 그쳤다. 2021년 도박 예방·치유서비스 이용 인원이 목표치인 9만 2,020명을 훌쩍 뛰어넘은 15만 8,466명인 것을 감안하면 관련 예산이 꾸준히 증가해야 하나 오히려 줄었다.

또한 최근 4년간(2019~2022년) 시도교육청별 청소년 도박중독예방 예산 현황을 살펴보면 울산과 대전은 단 한 번도 도박중독 예방 교육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인천과 충남은 2021년까지 3년 동안 한 번도 도박중독 예방교육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않다 지난해 각각 80만 원과 990만 원을 편성했다. 

경기·충북·경북은 2020년부터 관련 예산을 편성해 왔는데 대부분 예산을 도박예방교육위원회 운영비와 교원 대상 도박예방 교육 연수 강사비로 사용됐다.

서울의 관련 예산은 지난 2019년 3,540만 원에서 2022년 175만 원으로 급감하더니 올해는 자체 편성예산이 0원으로 확인됐으며 지금은 치유원에 전적으로 맡기고 있다.

이처럼 도박문제의 예방·치유는 치유원이 담당하고, 각 교육청은 협력, 지원 등에 큰 비중을 두면서 뒷전으로 물러앉아 있다. 그렇지만 소수의 공공기관이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교육하는 것은 역부족이다. 이 때문에 청소년 예방 교육의 경우 교육 당국이 특별한 과제로 선정해 중심을 잡고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치유원의 도박중독 예방 교육이 학교의 신청을 받아 진행하는 것도 문제다. 도박중독 예방 교육에 관심이 없는 학교의 학생들은 전혀 관련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접근조차 어렵다. 치유원 실태조사에서 도박문제 예방교육을 받았다고 응답한 재학 청소년은 64.8%, 학교밖 청소년은 52.0%에 불과했다.

실제로 올 1~8월 치유원의 도박중독 예방교육을 받은 학교는 1,637개로, 전체 9,440개의 17.3%에 불과하다. 자세히 살펴보면 초등학교의 경우 6,175개 중 803개(13.0%), 중학교는 3,265개 중 527개(16.1%), 고등학교는 2,379개 중 307개(12.9%)에 그쳤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청소년 사이버도박 실태 및 대응방안 연구’에 따르면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도박을 중단하는 만큼 청소년 관점에서 도박의 문제를 바라보고 게임과 도박의 경계를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예방교육이 마련돼야 한다.

특히 도박이 ‘학교 밖 청소년’에게만 발생하는 문제라는 인식을 버리고 교육부를 중심으로 초중고 단위로 문제 수준별로 차별화된 교육내용을 담은 교육콘텐츠가 배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예방교육뿐만 아니라 단속에서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최근 5년간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이하 사감위)의 온‧오프라인 불법도박 단속인력은 단 1명이 증가한 11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단속예산은 2022년 6억 6,000만 원에서 올해 5억 6,000만 원으로 오히려 삭감됐다.

무엇보다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다 보니 수시로 바뀌는 등 인력 부족 문제가 만연한 데다 단속 및 수사 권한 없이 단순 감시 기능만 하고 있어 3만 여건 이상 추정되는 온라인 불법사행산업을 단속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청소년들이 도박에 접근하는 통로를 단속‧차단하는데도 허점투성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차단 의뢰를 보내면 심의를 거치기까지 최소 2주에서 수개월이 소요되나 불법도박사이트 운영자가 복제사이트를 개설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8시간에 불과해 주기적으로 사이트 주소를 옮기기 때문에 차단의 실효성이 낮다.

전문가들은 효과적인 예방교육 프로그램과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강력한 단속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궁극적으로 청소년 도박의 예방과 치유는 부모와 교사의 적극적인 개입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도박의 흐름을 이해하고, 사이버도박에 대한 민감도를 높이기 위한 이해 교육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검찰과 경찰은 불법 도박사이트 감시업무를 수행하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불법도박 사이트 차단 권한을 갖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협력하는 체계를 구축하면 수사 시 혼선을 최소화하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현재 국회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서면 의결 또는 온라인 영상회의 방식으로 도박 또는 사행성 정보 등을 제공하는 불법사이트를 빠르게 심의할 수 있도록 하는 여러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정부가 최근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도박의 늪에 깊이 빠진 대한민국 청소년들을 빠르게 건져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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