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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심 판사 경력 많은 여성일 때 성폭행범 형량 2.2개월 늘었다

아시아교정포럼 [2023-10-27 14:4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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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심 판사 경력 많은 여성일 때 성폭행범 형량 2.2개월 늘었다

④여성 대법관 왜 필요한가

[이토록 XY한 대법원][단독]주심 판사 경력 많은 여성일 때 성폭행범 형량 2.2개월 늘었다

법관의 성별이 판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까. 법관 다양화는 왜 필요할까. 2018년 미투(#MeToo·나는 고발한다) 운동이 확산되던 시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남성 판사가 성범죄 피고인에게 관대한 판결을 내린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미국 등지에서는 성별 등 법관의 개인적 특성과 판결의 관계를 연구한 자료들이 많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법관 다양화 논의의 수준도 얕고 실증적인 연구자료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경향신문은 조서녕 미국 펜실베이니아 모라비안 대학 비교정치학 조교수가 한국 법원의 젠더 구성이 강간 판결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의 연구를 한 사실을 파악했다. 조 교수는 2019년 연구를 시작해 미네소타 주립대학에서 ‘법관의 성별 문제: 한국에서의 강간 판결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지난 7월 발행)을 썼다. 조 교수를 최근 인터뷰해 연구 과정을 상세히 들어봤다.

조 교수가 연구에 착안한 계기는 성차별과 관련된 민사사건을 심리하는 항소법원 재판부에 여성 판사가 한 명이라도 존재하면 여성 원고에게 더 우호적인 판결을 내린다는 미국 등의 연구자료였다. 한국의 성범죄 등의 젠더폭력 사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는지, 미국과 한국 사이에 존재하는 사법 시스템과 법원 구조·문화의 차이는 판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조 교수는 2014~2019년 서울·의정부·수원·인천 지역 8개 1심 법원에서 선고한 756건의 강간 사건(준강간 포함) 판결을 분석하고 42명의 법조인을 인터뷰했다.

연구에서 한국 법원 특유의 관료제, 위계서열 문화는 매우 중요한 쟁점이었다. 미국은 1심을 배심 재판으로 진행하고 2심은 3명의 판사로 구성된 합의부가 심리한다. 합의부는 법조 경력이 비슷한 법관들로 구성된다. 반면 한국은 배심 재판을 아주 예외적으로만 활용하고 기본적으로 직업 법관이 사건을 심리한다. 1심 합의부는 15년 이상 경력의 부장판사(재판장)와 그보다 경력이 적은 판사 2명으로 구성된다. 같은 재판부 구성원 사이에 많게는 15년의 경력 차이가 난다. 사건 심리 과정에서 위계서열이 작동할 수 있는 구조다.

판결 분석 결과 한국에서 여성 판사의 존재만으로는 강간 사건의 양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합의부가 위계적인 구조인 한국에서는 미국과 달리 여성 판사의 존재만으로는 남성 동료 판사들에게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혼성 재판부에서 여성 판사가 주심이고 연차가 높을 경우에는 전원 남성 판사로 구성된 재판부에 비해 형량이 평균 2.2개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 교수는 “여성 판사가 없는 경우, 모두 남성으로만 구성된 재판부는 남성 피고인에게 그 당시 관행적으로, 일반적이라고 여겨지는 적은 형량을 선고했다”고 했다.

법원 재판 일러스트. 경향신문 자료사진

법원 재판 일러스트. 경향신문 자료사진

“동질적 판사들로 구성된 재판부, 다양한 관점 논의 기회 줄어”

조 교수는 “이는 여성 판사의 존재가 자신의 사회적 경험과 성향에 따라 남성으로만 구성됐던 재판부에서 다뤄지지 않을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을 가져온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했다. 또 “동질적인 특성을 가진 의사결정자들로만 구성된 재판부는 ‘그룹 양극화’를 촉진해 의사결정 과정에서 의견 차이나 다양한 관점을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줄인다”고 했다. 여성 판사가 없을 경우 남성 판사들은 서로 비슷한 의견만 공유하며 결론을 낼 가능성이 높고, 이 성별 구성이 변하지 않으면 세 남성 판사의 판결은 일정한 틀로 고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여성이 연차가 높을 때 형량이 늘어난 것은 남성인 재판장 입장에서 경험이 더 많은 사람을 신뢰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재판부에서 가장 나이와 연차가 낮은 판사의 경우 남성이 지배하는 조직 내에서 수용될지 여부를 염두에 두면서 더 가혹한 판결을 선고하거나, 부장판사의 의견에 반대하고 싶어도 쉽게 반대하지 못하는 경향도 발견됐다.

논문의 토대가 된 판사들의 말이다. “성범죄의 경우 대부분의 피해자가 여성이다. 강남역 같은 곳의 남여 공용 화장실에 들어갈 때 여성들이 주저하고 걱정된다고 하는데, 그런 개인적인 인식과 경험 차이가 존재할 수 있고 그런 차이는 (판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A판사) “재판부에 여성 판사가 있는데 많은 정보를 얻는다. 제 눈에 잘 안보이는 것들이 있는데, 그런 것을 여성 판사들이 잘 캐치(파악)해준다. 원래 제 생각에는 양형을 몇 년 할 것인데 의견을 듣고 그게 맞다고 생각해서 바꾼 적도 있다.”(B판사)

미국은 어떤 특성을 갖는 판사로 재판부가 구성되는지를 집계하고 분석하는 데 적극적이지만 한국은 소극적이다. 조 교수는 주지사 임명과 국민의 직접 선출 등 다양한 판사 임용 과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판사의 정치적 성향, 활동 정보가 공개되고 검증과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딸만 있거나, 아들만 있는 판사가 젠더 사건에서 어떤 판결을 내리는지’와 같은 상당히 세부적인 쟁점을 놓고 연구도 진행된다. 1심 재판을 위한 배심원 구성 과정에서는 인종·나이·직업·경제적 수준·정치적 성향·결혼 여부·자녀 유무 등 수많은 요소를 따진다.

조 교수는 판사의 의사결정이 판사의 개인적 특성뿐 아니라 ‘업무량’과 ‘재판 경험’에 따라서도 달라진다는 스페인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판사가 처리해야 하는 사건의 양이 많은 상황에서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개인적인 단서나 인지적 추정(cognitive heuristics)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인지적 추정은 성별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여성 판사들이 남성 범죄자의 피해자 접근 금지 명령과 같은 피해자 보호 결정에 더 적극적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조 교수는 “1년에 약 460건 이상의 사건을 판결해야 하는 한국 판사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며 “판사의 (여성이라는) 성별이 곧 여성에게 우호적인 판결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성차별이나 성범죄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개인적 경험이 부족한 남성 판사들인 경우 (판결할 때) 개인적인 단서나 인지적 추정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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