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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범죄, 엄벌주의로는 한계… 사회정책·치유 함께 가야” [세계초대석]

아시아교정포럼 [2023-09-15 16:4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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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범죄, 엄벌주의로는 한계… 사회정책·치유 함께 가야” [세계초대석]

누구나 피해자 될 수 있다는 불안 팽배
정치권 표 때문에 ‘형벌 포퓰리즘’ 기대
무차별 범죄, 분노와 정신장애가 원인
교육·복지 등 안전망에 치료 병행돼야

사법입원제 등 중장기 대책 마련 절실
정당방위 확대 경찰 대응력도 높여야
가석방 없는 종신형, 사형제 대체할 듯
‘검수원복’보다 ‘검수완박’ 운용 잘해야

지난달 6일 저녁 서울 지하철 9호선 열차 안에서 ‘흉기 난동이 발생한 것 같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승객들이 대피하는 과정에서 7명이 넘어져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정작 열차 안에선 아무 일도 없었다. 방탄소년단 외국인 팬들이 인터넷방송을 보다가 환호성을 지른 것을 비명으로 오인한 것이었다.

불안은 일상이 됐다. 최근 두 달 사이 서울 신림역과 경기 성남시 서현역에서 흉기난동 살인사건이 잇따라 일어나면서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심이 확산하고 있다. 정부는 범죄자들을 엄벌하겠다며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태훈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장이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형정원에서 진행한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범죄자 처벌이 끝이 아니라 치유와 사회정책이 함께 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남제현 선임기자

하태훈(65)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장은 지난 6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엄벌주의를 ‘형벌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했다. “강력한 형사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하 원장은 “처벌이 끝이 아니라 치유와 사회정책이 함께 가야 한다”며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교육, 복지, 노동 등 사회적 안전망이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 원장은 사형 집행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며 “사형제를 폐지한다는 전제하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검수원복’ 논란과 관련해서 “문제가 있다면 되돌리기보다는 제도가 잘 운용될 수 있도록 개선하는 편이 좋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무차별 범죄에 대한 원인과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어떤 대책이 효과를 볼 수 있을까.

“우리 연구원의 이전 연구에 따르면 현실에 만성적으로 분노가 쌓인 이들,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이들이 주로 무차별 범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보인다. 왜 이들이 이러한 범죄를 저지르는지는 좀 더 따져봐야 할 문제다. 원인을 잘 규명해야 그에 대한 대응책도 세울 수 있다. 다양한 대책들이 나오고 있는데, 국민 불안감이 해소되면 또 잊힌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사법입원제 등도 4년 전 이미 거론됐었다. 당장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단기적 대응도 필요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원인을 분석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그동안의 형사정책이 실패한 것이라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 동의하는가.

“한국은 2010년대 이후 엄벌주의로 가는 추세다. 2010년 자유형 상한이 15년에서 30년으로 2배 뛰었다. 강력범죄 자체는 줄어들고 있다. 강력한 형사정책의 효과로도 볼 수 있겠지만 바로 거기에 또 한계가 있다. 정신장애나 사회적 불만에 기인한 범행은 처벌한다고 끝인 게 아니라 치유와 함께 다른 사회정책이 함께 가야 한다. 독일 형법학자 프란츠 폰 리스트는 ‘최선의 사회정책이 최선의 형사정책’이라고 말한 바 있다.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교육, 복지, 노동 등 사회적 안전망이 갖춰져야 한다는 의미다. 엄벌주의만으로는 어렵다. 사회에서 낙오된 이들을 방치하면 지금처럼 엄청난 비용이 든다. 장기간 가둬 놓기만 하면 그동안은 안전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수감된 이들이 사회로 나오게 되고, 결국 범죄로 나아간다.”

―서현역 흉기난동범 최원종은 과거 조현병 치료를 받다가 중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의 범죄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법무부에서 사법입원제 등의 대책이 나오고 있다.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판사들이 정신건강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결국 의료인 자문을 구해야 한다. 지금도 재판 건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 법원이 일일이 판단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인적·물적 자원을 잘 검토해서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

―현장에서는 경찰의 대응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저위험 권총 지급, 정당방위 적용 확대 등이 거론되고 있다.

“정당방위 범위를 지금보다 넓히는 것은 필요하다. 순간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정당방위가 적용되지 않으면 현장에 있는 경찰들이 주저하게 된다. 저위험 권총 도입은 범죄 예방효과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실제로 범죄가 일어난 뒤 권총은 아무 소용이 없다. 모든 현장을 경찰이 샅샅이 지켜볼 수도 없다.”

―머그샷 논란은 어떻게 보고 있나. 가해자 인권을 과도하게 보장하고 피해자 인권을 소홀히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범죄자 얼굴을 알리는 것이 누구에게 도움 될까. 범인이 누군지 알려졌지만 잡히지 않아 추가 범죄를 막을 필요가 있는 상황에선 알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검거된 사람 얼굴을 굳이 알리는 것은 국민의 분노와 복수심이 해소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신상 공개가 범죄 방지에 큰 효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마약범죄가 연령대와 직업군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마약 청정국’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마약범죄 경향과 적절한 대응 방안이 있다면.

“마약범죄의 최근 경향에 대해 초경계, 게릴라성, 조직범죄라고 규정할 수 있다. 10~20대까지 저연령화되는 등 경계가 무너지고 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다크웹 등을 통해 언제 어디서 마약 유통이 이뤄질지 알기 어렵다. 분업 조직화돼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위장수사가 허용됐듯 마약범죄에도 ‘언더커버’ 수사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전담기구 도입도 검토해 볼 만하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사형집행시설 점검을 지시했다. 사형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세 번째 위헌 여부 결정도 조만간 있을 예정이다.

“한 장관의 지시는 국민을 안심시키고 잠재적 범죄자에 경고하는 차원으로 보인다. 한국은 25년 이상 사형집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다시 집행하기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헌재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도입된다면 헌재가 위헌으로 판단할 여지가 있다. 대안이 있으니 사형제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점쳐본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과 사형제가 병존할 수 없나.

“사형제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병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도 사실 극형(極刑)이다. 가석방이 없다는 것은 교도소에서 죽어야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비인간적이고 인간 존엄에 반한다. 사형제와 병행하는 것은 국가로서 굉장히 부담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사형제를 폐지한다는 전제하에 대안은 될 수 있다고 본다.”

 

―현 정부의 엄벌주의 기조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진보든 보수든 이념과 상관없이 엄벌주의로 가고 싶어한다. 노태우정부 때 ‘범죄와의 전쟁’ 이후 같은 기조로 계속 가고 있다. 표 때문이다. 유권자가 범죄로 불안해하면 안심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서다. 이른바 ‘형벌 포퓰리즘’이다.


―그런데도 왜 국민은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고 느끼나.

“국민의 기대에 비해 실제 선고되는 형량이 낮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자유형 상한이 제일 높은 국가 중 하나다. 미국에서 징역 몇백년을 때린다고 비교하는데, 미국은 순차적으로 형이 집행되기도 하지만 여러 형이 동시에 집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햇수만 200년이지 실제로 200년씩 가두는 것이 아니다.”

―문재인정부의 ‘검수완박’, 이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검수원복’에 대해 평가한다면.

“막강한 검찰 권한이 제대로 쓰였다면 이런 논란이 없었을 것이다. 이것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가 나온 것이다. 검경이 서로 견제하고 협조하는 대등한 관계가 됐으면 하는 취지다.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가 지연되고 있고 공수처가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성과가 나타나고 제도가 안착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되돌리기보다는 제도가 잘 운용될 수 있도록 개선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2021년 8월 취임 후 임기 2년간 소회는.

“형정원은 정책이나 입법 결정 과정에 근거를 제시하는 기관이다. 입법자가 정책을 도입했을 때 어떤 장단점과 문제점이 있는지 우리 연구를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잘 해왔다고 본다. 2021년 형사정책연구원에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으로 명칭이 바뀌고 연구영역이 확대됐다. 형사정책은 지난 30년 동안 잘 해왔지만, 법무정책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법무정책 연구 기반을 마련하는 데도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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