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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아살해죄 논란]① 살인죄보다 훨씬 가벼운 영아살해죄 처벌

아시아교정포럼 [2023-07-07 1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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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아살해죄 논란]① 살인죄보다 훨씬 가벼운 영아살해죄 처벌





지난 6월29일 경찰은 자신이 낳은 아이를 죽여 시신을 냉장고에 유기한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의 피의자 고 모(35)씨 혐의를 ‘영아살해’에서 ‘살인’으로 변경했다. 당초 경찰은 고 씨가 출산 몇 시간 뒤에 아이를 죽였다고 진술한 점을 바탕으로 영아살해죄를 적용하려 했으나, 사건의 사회적 파장이 커지고 고 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혐의를 살인으로 바꿨다.

이처럼 국내 현행법상 영아를 죽인 죄는 일반 살인죄와 구별된다. 형법 251조는 영아살해죄를 “(원치 않는 출산의) 치욕을 은폐하기 위해서나 (경제적 형편상) 양육할 수 없다고 예상하거나 (그 외) 참작할 만한 동기로 인해 직계존속이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 영아를 살해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영아살해죄 처벌 정도는 일반 살인죄보다 훨씬 경미한 수준이다. 살인죄의 경우, 형량의 상한선 없이 최소 5년 이상 징역형을 선고하지만, 영아살해죄는 하한선 없이 최고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도 법규상 명시돼 있는 것일뿐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낮은 형량을 매기는 게 일반적이다.

◇2017년부터 최근까지 영아살해 33건, 징역형은 16건뿐

5일 조선비즈가 ‘온라인 판결문 열람’에서 ‘영아살해’를 검색해 2017년 1월부터 올해 7월까지 확보한 판결문 총 64개(상급심 포함)를 분석한 결과, 전체 영아살해 사건 33건 중 1심부터 유죄가 인정돼 징역형을 확정받은 사건은 16건에 불과했다. 가장 무거운 형량이 징역 3년, 가장 가벼운 형량이 징역 10개월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아이를 살해한 부모가 감옥에 가지 않았던 사건도 총 17건이나 됐다.

사람의 목숨을 뺏는 죄를 저지른 피고인이 집행유예라는 가벼운 처벌만 받고 그친 이유는 법원이 피고인 개개인의 성장배경과 미성년의 나이 등 제반사항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한 판결문에는 “친모인 피고인 자신의 불우한 성장 과정도 이 사건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란 표현이 나온다. 특히 지적장애가 있는 한 피고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결문에는 “피고인을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한 국가와 이 사회 또한 법적 책임은 아니더라도 결과에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이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출산 직후 피고인의 극도로 불안정한 심리 상태 ▲친부의 연락 두절 ▲양심의 가책 등을 고려해 비교적 가벼운 형을 내리기도 했다.

피고인이 다른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감형받은 사례도 있다. 2019년 전북 한 오피스텔 주차장에서 혼자 분만한 아이를 살해한 뒤 풀숲에 유기한 A씨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A씨는 이미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자녀 5명을 보육원에 맡긴 상태로, 살해한 아이는 다른 남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였다. 살해된 아이의 생부는 A씨가 임신한 사실을 알자 연락을 끊어버렸다. 절망한 A씨는 이번엔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는 대신 살해했다. 재판부는 형량에 대해 “엄벌이 불가피하다”면서도 “다른 다섯 명의 아동이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범행에 이르게 된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해 처벌이 너무 가볍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영아살해죄 판결 중 절반이 집행유예다. 생명을 앗아가는 사건에 애와 어른의 구별이 따로 있겠나. 판결이 영아살해를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며, “법을 폐지하든지, 재판부에서 영아살해를 엄격하게 다뤄 높은 형량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6.25 직후 제정된 영아살해죄...선진국선 대체로 폐지

영아살해죄가 제정된 것은 6.25 직후인 1953년이다. ‘보릿고개’라는 표현이 아직도 남아 있던 당시엔 키울 형편이 안 되는데 태어난 아이는 가족 전체의 생계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런 절박함이 영아살해죄 처벌이 일반 살인죄에 비해 많이 가벼워진 배경이 됐다.

하지만 1950년대 초반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한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영아살해죄를 폐지하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원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영아살해죄는 우리가 보릿고개를 벗어나지 못할 당시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서 생긴 규정”이라며 “현재 국내 상황상 영아살해죄를 용납할 필요가 없다. 폐지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선진국에선 영아살해죄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1994년 영아살해죄를 없앤 프랑스는 현재 영아살해를 살인죄와 동일하게 보고 사안에 따라 종신형을 내리기도 한다. 독일은 1998년 영아살해죄를 없앴으며, 미국과 일본은 영아살해죄를 별도로 두지 않고 일반 살인죄와 동일하게 보고 있다.

반면 영국은 1938년 제정된 법률에 근거해 피의자가 출산이나 출산에 따른 수유, 산후우울증으로 심리상태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자신이 낳은 생후 1년 이내 아기를 죽였을 때 등을 감경(減輕) 요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최고 종신형을 선고할 수 있어 형량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2017년 영국 랭커셔주(州) 번리(Burnley)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가위로 살해한 20대 여성에게 법원은 종신형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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