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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파고드는 무인점포, ‘고사리손’ 향한 보이지 않는 유혹

아시아교정포럼 [2023-06-26 13:3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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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파고드는 무인점포, ‘고사리손’ 향한 보이지 않는 유혹

8~9세로 보이는 아이는 그저 바들바들 떨 뿐이었다. 부모 이름을 물어도, 본인의 이름을 물어도 아이는 “기억이 안 난다”며 울먹였다. 출동한 경찰도 난감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가게 주인은 팔짱을 낀 채 아이를 노려봤다. 추궁당하는 아이 옆으로 또 다른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물건값을 치르고 나갔다.

지난 6월 9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바로 앞에 있는 무인점포(상점)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계산을 안 하고 물건을 가져가던 아이를 붙잡은 주인이 경찰에 신고했다. 여러 사람이 오가는 가게 안에서 잔뜩 겁을 먹은 아이는 경찰관의 질문에 자신의 이름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며칠 뒤 가게 출입구 앞에는 “절도 학생을 붙잡아 경찰 조사 및 피해보상(10배)을 받고 사건을 종결했다”는 안내문과 사진이 붙었다.

어딘가 보기 불편한 이 장면은 ‘절도범의 연령이 점차 낮아지고 있음’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값을 안 내고 물건을 가져간 행위는 엄연히 절도이므로 아이를 옹호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가지 생각해볼 부분은 있다. 교문 바로 앞에 그 무인점포가 없었다면, 적어도 주인이 있는 ‘유인상점’이었다면 아이가 물건을 훔쳤을까.

“학교 앞 문방구 빈자리에 무인상점”

창업비용이 비교적 낮고, 인건비가 절감되는 무인점포는 코로나19 확산 시기를 거치며 ‘비대면 거래’ 선호 현상까지 더해지면서 급증하는 추세다. 빨래방, 카페, 공부방(스터디룸), 복권방, 문구점, 아이스크림 판매점, 편의점 등 업종도 다양해지고 있다. 해마다 무인점포가 큰 폭으로 늘다 보니 아직 정확한 집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보안업체 에스원은 2022년 12월 자체 보안보고서를 통해 무인점포가 전국에 10만 곳 이상일 것으로 분석했다.

무인점포의 ‘원조’로 통하는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은 지난해까지 전국에서 5000~6000곳 이상이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통업계의 자체 분석이다. 서울경찰청이 지난해 2월 기준 집계한 서울시내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은 729곳으로, 빨래방(896곳)에 이어 무인점포로는 두 번째로 많았다.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이 매년 1.5배 내외씩 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올들어 1000여 곳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초창기에 아이스크림과 과자 등 간식류 정도를 팔았다. 지금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가게 한켠에 무인 복권방을 병행하는 경우도 있고, 최근 학교 근처에 생기는 판매점들은 아이스크림은 기본이고, 각종 문구류와 장난감류 등을 함께 취급한다. 이렇다 보니 학교와 인접한 무인점포는 어린 학생들에게 이른바 ‘핫플레이스’가 된다. 신고업이 아닌 자유업종인 무인점포는 법에서 규정하는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의 규제대상이 아니다. 자리만 있으면 교문 바로 앞에도 개점이 가능하다.

6월 20일 찾은 서울 송파구의 한 학교 옆 무인점포에도 하교 시간이 되자 어린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이 판매점은 600~1200원짜리 아이스크림 외에도 1000~2000원 내외의 볼펜과 샤프 등의 학용품, 1만~2만원의 캐릭터 상품과 장난감, 요즘 유행하는 ‘캡슐뽑기’ 등을 함께 판매 중이다. 물건값은 신용카드와 현금(지폐·동전)으로 지불 가능하다. 친구 3명과 함께 판매점을 찾은 4학년 학생은 “수업 끝나면 간식거리 사러 자주 온다”며 익숙한 듯 현금으로 계산을 마치고 나갔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과거 학교 앞 문방구가 학생들이 자주 찾는 장소였다면 지금은 무인점포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무인상점 범죄 10건 중 6건이 10대 청소년

창업주에겐 무인점포가 저비용 고효율의 수익모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간과하기 어려운 이면이 있다. 무인점포가 늘면서 10대 학생들의 무인점포 내 범죄행위도 덩달아 늘고 있다는 점이다. 무인점포 내 10대 학생들의 범죄행위가 언론을 통해 종종 알려지고 있지만, 단순히 화제성으로만 다루기엔 문제가 꽤 심각해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무인점포 범죄피해 실태 및 형사정책적 대응방안 연구’ 보고서를 발간했다. 무인점포 범죄 관련, 국내 최초의 심층 분석 보고서다.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내 무인점포 대상 범죄는 2020년 9월부터 2022년 1월 사이 모두 1640건이 발생(서울경찰청 집계)했다. 범죄 중 절도가 83.9%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범죄피해가 가장 많은 곳은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1000건·61.4%)이었다. 범인 연령대별로는 10대 청소년(57.3%)이 가장 많았다. 보고서는 “행위자가 촉법소년(만 10~14세)일 경우 형사사건으로 접수되지 않아 통계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더 많은 (무인점포) 범죄가 저연령 청소년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촉법소년에도 해당하지 않는 10세 미만 학생의 경우 절도 등이 적발돼 신고되더라도 기록이 남지 않아 범죄 건수 파악이 불가능하다.

업계에서도 미신고 소액 절도까지 감안하면 학생들의 실제 범죄 건수가 경찰 집계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 무인점포 운영자는 “어린 학생들이 600원, 1000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 어쩌다 한번 그냥 들고 나가는 것까지 일일이 신고하지는 않는다”며 “여러 차례 절도를 하거나 피해금액이 클 때 경찰에 신고한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무인점포가 취급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특성상 아동과 청소년들의 가게 이용 비율이 높을 것으로 추정돼 피해를 입은 사업체의 위치를 조사한 결과 70%가 초·중·고등학교로부터 반경 300m 안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도 밝혔다. 무인점포가 학교와 인접한 것이 점포 내 청소년 범죄 발생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무인점포가 윤리의식이나 판단력이 부족한 어린 학생들의 범죄를 유발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지적한다. 박은영 대구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는 “상담을 다녀본 결과로는 지난해 여름쯤부터 무인점포 절도 문제로 경찰서에 입건되는 어린 학생들이 크게 늘었다”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못 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무인점포는 ‘그냥 가져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범죄라기보단 기술발달에 따라 생겨난 새로운 형태의 ‘비행’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어린 나이에 경찰서에 가기 시작하면 추가적인 비행이나 범죄로 가기 훨씬 쉬워지므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 사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비용적인 부분만 놓고 보면 절도를 당하더라도 피해 금액이 인건비 지출보다 적을 경우 무인점포를 유지할 이유가 된다”면서도 “다만 절제가 부족한 청소년과 어린 학생들에게 범죄를 일으킬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밝혔다.

보안과 출입 통제 강화 고려, 이용교육 필요

무인점포가 골목상권의 추세로 자리 잡은 이상 앞으로 더 늘면 늘었지 줄진 않으리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10대 청소년들의 범죄를 예방할 수 있도록 각종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조성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사건 대부분이 어린 학생들로 인한 소액 피해이고, 무인점포의 특성상 학생들의 범죄가 발생하기 쉬운 환경인 점을 감안하면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게 해답이 될 순 없다”며 “보안설비 강화나 본인인증시스템 혹은 회원제 도입, 가정과 학교에서의 청소년범죄예방교육 강화 등 다각적인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비록 무인점포라 하더라도 학생들이 집중적으로 이용하는 시간대엔 유인점포로 운영을 하거나 무인점포 운영 시 신용카드 인증 등으로 일정 부분 출입을 제한하는 방법도 있다. 유·무인 편의점을 병행하는 이마트24가 이 같은 방식을 이용 중이다.

학교 차원의 예방교육은 아직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에 각각 무인점포 내 학생 범죄 문제에 대한 대응 방향 등을 문의했지만 “소관 업무가 아니라 파악하고 있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현재로선 일선 학교에서 필요에 따라 가정통신문 등을 통해 무인점포 이용방법이나 절도 예방교육을 안내하는 정도가 전부다. 이 경우도 대부분 학교의 학생이 무인점포 절도 등 범죄를 저질러 문제가 된 이후 취해져 예방 조치로는 부족하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예전에 학생들 경제교육차원에서 학교에서 자체 발행한 화폐를 나눠준 뒤 해당 화폐로 학교에서 제시한 여러 학습 준비물을 직접 사보는 교육을 하기도 했다”며 “무인점포가 많아지니 이런 방식의 이용실습 교육도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장학사는 “교육만으로 절도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학교와 인접한 무인점포는 특히 점주도 책임감을 갖고 학생들의 범죄예방에 더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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