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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아살해 절반이 ‘집행유예’…70년 전 감경사유 그대로 탓

아시아교정포럼 [2023-06-26 13:2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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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아살해 절반이 ‘집행유예’…70년 전 감경사유 그대로 탓


수원에서 출산한 영아를 살해한 뒤 집 냉장고에 보관한 30대 친모가 지난 23일 영아살해 혐의로 구속된 가운데, 지난 2년 동안 영아살해 혐의로 재판을 받은 이들의 절반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영아살해죄는 살인죄나 존속살해죄와 달리 감경해 처벌하기 때문이다. 형법이 제정된 지 70년이 지나도록 이 조항은 바뀌지 않았다.

25일 <한겨레>가 대법원 판결서 인터넷 열람 제도를 통해 2021년 6월25일부터 2년 동안 ‘영아살해’ 확정 판결문 10건을 확인한 결과, 가해자 모두 징역 3년 이하를 선고받았고, 그 가운데 5명은 집행유예였다. 술집에서 남성을 만난 뒤 임신한 19살 ㄱ씨는 가족들에게 임신 사실을 숨긴 채 집에서 출산했고 영아를 살해해 주검을 유기했다. 법원은 혼날까 봐 두려움에 저지른 범행이라는 점을 참작해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친아빠가 확인되지 않은 아이를 낳자마자 살해하고 주검을 인근 야산에 유기한 27살 ㄴ씨에겐 징역 3년이 선고됐다. 법원은 남자친구의 아이인데도 아니라고 생각해 살해함으로써 죄책감과 상처가 상당하다는 ㄴ씨의 사정을 고려했다.

형법 제251조 영아살해를 보면, ‘직계존속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하거나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로 인하여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를 살해한 때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형법 제250조 살인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존속살해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 것과 대조적이다. 집행유예는 판사가 ‘징역 3년 이하’를 선고할 때만 가능한데, 영아살해는 ‘징역 10년 이하’로 최고 형량만 규정돼 있어 집행유예 선고 가능성이 크다. 형법 영아살해 규정은 1953년 형법이 제정될 당시 만들어진 이후 개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1950년대와는 달리 현재는 일부 합법적 낙태 시술이 가능해지고 가정위탁 등 복지 제도 등이 생겨났기에, 영아살해죄를 감경 처벌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성낙현 전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0년 <영아살해죄의 해석론과 입법론>에서 “피임 방법의 발달, 사생아 양육에 대한 사회적 배려에 따른 인식 변화 등을 고려한다면 영아살해죄 규정을 지금까지 지탱해온 사회 일반의 가치관은 더는 의미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소속 신수경 변호사는 “영아살해죄처럼 가해자의 특수한 사정 등 주관적인 요소를 갖고 감경을 해주는 법조문은 드물다. 또한 아동학대 살해죄를 신설해 살인보다 엄하게 처벌하는 요즘 영아살해죄의 감경 취지는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신 변호사는 “영아살해 범죄에 일반 살인이나 아동학대 살해죄를 적용하되 친모에게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양형에서 고려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미혼모의 영아살해 이유를 들여다보면, 가족과의 교류가 단절된 상태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등 현재의 정부 지원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며 “영아살해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지만, 미혼모의 지원 강화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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