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손봉호 철학의 핵심 개념이다. 이 저서는 인간의 원초적 경험으로써 고통에 대한 철학적 이해를 목표로 한다. 우리나라에서 고통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책은 이 책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특정 주제를 다룬 전문 철학 서적이 난해해 읽기가 어려운 반면 이 책은 비전문가들도 읽을 수 있도록 전문 서적과 에세이의 중간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책이 쉽다고 해서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사유의 깊이와 폭이 만만한 것은 아니다. 신학사와 철학사를 광범한 배경으로, 이 책은 일종의 ‘고통의 해석학’을 위한 항해를 자유롭게 수행한다. 고통에 대한 정의, 고통과 역사, 고통과 실존, 고통과 윤리, 고통과 문화 등의 주제를 거쳐 현대인과 고통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에 이른다. 구약성서가 가르치는 정의가 곧 가장 큰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그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임을 확인한 데서 고통 문제를 학문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자기 주제로 삼기 시작했다는 저자는 부정적 경험으로서의 고통이야말로 현대 사회에서 ‘나’의 정체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나아가 ‘우리’를 형성하는 윤리적 기초가 됨을 역설한다. 고통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다. 고통을 경험하는 사람은 유적인 인간이 아니라 역사의 현장에 있는 구체적인 개인인 것이다. 하지만 그 고통을 야기하는 것은 제도나 구조 등 추상적 실체가 될 수 있다. 고통의 실존적 차원과 고통을 낳는 환경의 사회·정치적 차원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것이 저자의 궁극적 의도라 할 수 있다. 고통을 줄일 수는 있으되 제거할 수는 없다. 적절한 고통은 자아를 확립하는 데 도움을 주며, 타자와 긍정적 관계를 형성하는 촉매가 된다. 특히 쾌락을 억제함으로써 생기는 고통은 기꺼이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과잉 쾌락은 타인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고통의 윤리학이 성립한다.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 고통은 자원해 당하거나 거부하지 않을 준비를 갖추는 것이 현대적 윤리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 책은 고통과 죽음 그리고 욕망과 쾌락의 변증법적 관계를 통해 우리 삶의 지평을 이해하는 데 더 없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준다.
목차
머리말
제1장 논의를 시작하면서
제2장 고통과 철학
제3장 '아픔', '괴로움', '고통'
제4장 원초적인 경험으로서의 고통
제5장 주관적 경험으로서의 고통
제6장 고통과 역사의 의미
제7장 고통과 생존
제8장 고통과 윤리
제9장 고통의 극복과 문화
제10장 인간과 고통
맺는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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