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은 누군가의 어린 딸을, 누군가의 소중한 어머니를, 어린 아들의 하나뿐인 아버지를 앗아갔다. 음주운전은 ‘살인을 예비한 범죄’다. <오마이뉴스>는 윤창호씨 사건이 발생한 2018년 9월 25일부터 스쿨존에서 사망한 배승아양 사건이 있었던 2023년 4월 8일까지, 진행된 ‘음주치사’ 재판 판결문을 일일이 찾아냈다. 그렇게 마주한 63명의 가해자들은 다양한 감경사유를 내세워 수갑을 벗었다. 이미 음주전과가 있었던 이들은 또 다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사람을 죽였다. 음주 살인자들의 운전대, 지금 멈춰야 한다. <편집자말>
[이주연, 조혜지 기자]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사람들이 대책을 세우겠다고 모인 포털사이트 한 카페에는 3만여 명 회원이 가입돼 있다. 이들은 징역형을 면한 걸 "살아 돌아왔다"고 표현했다. '판결 선고 후기' 게시판에는 2021년 이후 "살아 돌아왔다"는 글만 102개 올라온 상태다.
'후기 글'들에 따르면 이전 음주운전으로 집행유예 이력이 있어도, 6번째 음주운전을 저질렀어도, 음주운전 후 뺑소니를 쳤어도 이들은 살아 돌아왔다.
"반만 살아 돌아왔다"는 후기 글을 남긴 한 남성은 2016년 1월 음주운전으로 벌금형을 받은 전력이 있다고 했다. 여기에 2018년 3월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다치게 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2022년 6월 또 다시 술을 마신 채 운전대를 잡았다고 했다. 혈중알코올농도는 0.2%가 넘어갈 정도로 수치가 높았다.
이로써 세 번째 음주운전이 '발각된' 그는 "기억이 없는 상태에서 운전했다, 가족들 보기 미안하다"면서도 "쌍집유(두 차례 연달아 집행유예형이 나오기) 힘든가요?"라고 물었다. 그는 "아내가 셋째를 임신했는데 중요한 선처 요소가 될"지도 궁금하다고 했다. 또 다른 회원이 댓글로 조언했다.
"전적으로 판사 성향에 달렸어요. 초단기(음주운전 적발 사이의 기간이 짧다는 뜻)라 쌍집유 힘들어요... 최후변론도 중요해요... 처절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판사한테 어필해야 돼요."
또 다른 회원은 "요즘 셋째 낳으면 정말 애국자이신데 판사님도 참작 많이 하실 겁니다. 최고의 양형자료가 되겠네요.^^"라며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2023년 4월 재판이 열렸다고 한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반만 살아 돌아'왔다.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법정 구속은 피했다고 했다. 그는 "판사님이 '법정구속까지는 하지 않겠다'고 7일 이내 항소하라고 하시네요, 임신한 아내 덕이 큰 것 같습니다"라며 "선고 직전까지 금주일기 작성한 점, 많은 사람들이 탄원한 점이 유리한 양형"이라고 전했다. 해당 글에는 66개의 댓글이 달렸다. 다수의 사람들이 "항소심에서 집유 받길 바란다, 힘내라"며 가해자를 위로했다.
그들의 꿀팁 "처절하게 반성하는 모습 어필 하세요"
또 다른 남성 역시 "살아 돌아왔다"라며 카페에 글을 올렸다. 2007년 무면허 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벌금 300만 원형을 받았다고 했다. 2012년 12월 또 무면허 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했고, 음주 측정까지 거부했다. 그래도 벌금 500만 원형이 나왔다고 했다.
2022년 8월, 만취상태(혈중알코올 농도 0.22%)에서 여자친구가 다쳤다는 소식에 차를 몰았단다. 운전 중 차 사이드미러로 자전거 운전자를 쳤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피해자가) 10분 안에 1500만 원 입금해라, 아니면 신고한다"고 말했고, 그는 "신고하라, 배상해주겠다"는 말과 함께 도망쳤다. 결국 경찰에 붙잡혔다.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에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치상)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고 했다.
카페에 남긴 글에 따르면 그는 ▲ 어머니 치매진단서 ▲ 어머니 기초생활수급자료 ▲ 음주운전 사고 당시 여자친구 부상 진단서 ▲ 여자친구 우울증 치료 진단서 ▲ 결혼식 계약서 ▲ 반성문 5부 ▲ 가족탄원서 7부 ▲ 알코올중독 치료를 위한 정신과 진료 서류를 '양형자료'로 준비했다.
여기에 재판 하루 전, 1500만 원에 한 피해자와의 합의가 더해졌다. 글쓴이에 따르면, 재판 결과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었다. 이 같은 결과에 20개가량의 축하 댓글이 달렸다. 응원에 힘입어 그는 다른 카페 이용자들에게 "대구O단독이면 힘내시라"며 조언을 남겼다. 특정 판사의 성향에 대한 언급이었다.
"저 (재판 선고) 앞 0.19(혈중알코올농도를 뜻함) 피해자 식물인간인데 합의하고 집유로 나가셨어요. 초범이고 합의 3억, 전과 아예 없는 점(이 유리한 양형으로) 집유 받고 나가셨어요. 음주는 (판결이) 유하고 사기는 법구(법정 구속) 다 시키더라고요."
카페 회원들은 자신의 재판을 담당한 판사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음주운전 판결 '성향'을 공유하고 각자의 형량을 예상하고 있었다.
5만 원에 살 수 있는 '음주운전 피고인의 반성문'
2009년 음주운전 기소유예, 2010년 음주운전 벌금 200만 원, 2015년 음주운전 벌금 200만 원, 2017년 음주운전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또 다른 회원이 밝힌 전력들이다. 그리고, 2022년 8월 음주운전 단속에 또 걸렸다고 했다. 2023년 2월 재판을 받았고 그 역시 "기적으로 살아 돌아왔다"고 했다.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형. 그가 카페에 올린 양형자료 목록은 매우 방대했다.
▲ 어머니 암 진단서 ▲ 부모님 기초수급자 확인서 ▲ 3종 음주근절서약서 ▲ 음주근절교육이수증 ▲ 음주운전 1인 캠페인 피켓 2회 사진 첨부(경찰서 앞, 시청 부근, 도로) ▲ 알코올 중독 관련 병원 치료 4회 영수증 및 의사소견서 ▲ 대리 운전 내역 ▲ 2020년 소액 정기 기부 ▲ 헌혈 확인서 ▲ 반성문 총 3회 ▲ 지인 탄원서 3부 ▲ 어머니 탄원서 1부
재판 두 달 전, 그는 "소주 한두 잔의 경각심이 없어서 이렇게까지 왔다"라며 "경찰조사 때 '음주운전 재범방지 교육수료증, 준법정신 교육수료증' 등을 냈는데 더 필요한 양형자료가 없냐"며 카페에 문의 글을 올렸다.
이에 또 다른 회원은 "봉사활동, 헌혈, 기부내역 등 찾으면 많아요, 알코올 치료도 받아 관련 서류도 내고 (음주근절) 피켓 캠페인 활동도 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가 재판에서 활용한 양형자료 목록을 보면, 이 조언을 충실히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음주운전자들은 또 다른 음주운전자들과 '감경 팁'을 공유하며 처벌의 기로에서 손쉽게 탈출하고 있었다. 앞선 그의 질문 글에는 또 다른 회원이 댓글로 "죄송한데, 혹시 (음주운전 재범방지) 교육은 어디에서 받으셨냐"고 재질문하기도 했다. 그는 한 사이트 URL을 남겨주었다.